횡보(橫步)의 문리(文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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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흐름에 진보주의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면 염상섭의 사상을 횡보주의라 부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와 작품에서 읽히는 비근대성 및 비이념성은 횡보주의라는 호칭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단독적 ‘주의’를 부인하는 ‘주의’이므로 하여, ‘주의자’로 부를 수 없는 ‘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횡보를 객관성과 합리성의 시야에서 일련의 개념과 체계로 구성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자칫 헛되다. 그의 행보와 작품을 ‘비동일성의 동일성’ 나아가 ‘비변증(非辨證)의 변증’을 통해 살펴야만 하는 이유이다. 진보를 향한 각종의 ‘주의’들이 난무하던 1920년대를 경과하는 가운데 염상섭은 시대를 건너는 자신의 보행법을 ‘횡보(橫步)’라 부르며 「만세전」의 묘지 같은 시간과 작별했다. 매체를 선택함에 있어, 양식을 설정함에 있어, 다른 주의자와 논쟁을 벌이는 데 있어, 횡보는 삶의 광대한 산포(散布)와 이리 얽히고 저리 섞이는 혼연(混緣)으로서 세계의 상(像)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도 내칠 수 없는 공편(共遍)과 서로 닮아 질기게 이어져 있는 통섭(通涉)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묘하게도 서로 다름을 뜻하는 ‘산혼(散混)의 상상’이 서로 호응함을 의미하는 ‘공통(共通)의 상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소설 『삼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