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aborative Works among Monk-sculptors and Schools in 17th Century Korea

조선시대 17세기의 조각승 또는 유파들은 일정한 지역을 근거로 활동 하였으며, 하나의 집단 또는 유파 내에서 일정한 조각승들끼리 불상을 조성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조각승 집단이 모여 함께 불상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불사는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첫 번째 경우로 왕실의 후원을 받아 많은 불상을 한꺼번에 조성한 경우가 있으며, 두 번째는 둘 또는 세 조각승 집단의 조각승들을 모아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화주승의 역량이 큰 경우를 들 수 있다. 조각승 유파 사이의 합동작업에 참여한 조각승들은 당대의 명장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조성한 불상들은 시대를 대표할 만한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지장암에 봉안되어 있는 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이 불상은 당시 임금인 광해군의 정비인 장열왕후가 당시 조선의 가장 유명한 조각승 유파와 조각승들을 모아 만든 불상이다. 조각승 유파와 참여 조각승들의 수준과 규모는 모두 施主者와 化主僧의 능력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에 둘 이상의 조각승 유파가 참여하여 불상을 조성한 합동작업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필자는 4 사례만을 찾을 수 있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하나는 함께 조성된 모든 불상들은 참여한 조각승들이 모두 함께 조성한 사례로, 전라북도 완주군 송광사의 〈소조삼방불좌상〉과 전라남도 구례군 천은사 수도암의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들 수 있다. 송광사의 불사에서는 수조각승의 작풍만이 불상들에 나타나 있는데 반해, 수도암의 불사에서는 수조각승과 차조각상의 작풍이 불상들에 함께 나타나 있어 차이를 보인다. 다른 하나는참여한 조각승 유파가 각각의 불상들을 나누어 조성한 사례로,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 대웅전의 〈목조삼신불좌상〉을 들 수 있다. 화엄사 삼신불 중에서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청헌파가 조성하였으며, 노사나불은 응원파가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 지장암에 봉안되어 있는 은 원래 왕실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던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할 목적으로 만든 11존상 가운데 하나였다. 이 불사에는 당시 조선의 최고 조각승들이자 자신의 독자적인 유파를 이루고 있었던 현진, 응원, 수연 등이 참여한 매우 이례적인 합동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1존상 가운데 나머지 10존상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구체적인 합동작업의 양태는 아직 알수 없는 상황이다. 17, 18세기 조각승 유파 사이의 합동작업의 사례들은 앞으로도 계속발견될 것으로 생각되며, 조선후기에 불상들이 제작되는 전체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