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I 행정부와 전략방어정책

이 논문은 냉전이 해체되고 있던 시점인 1989년부터 1992년 시기 미국 지도자들이 전임 정부 방위정책의 핵심이었던 소위 ‘전략방어정책(Strategic Defense Initiative: SDI)’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부시행정부가 들어서던 시기는 40여년을 계속하던 냉전이 종식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소련의 해체 속에서 사라진 주적의 핵공격을 막기 위한 고난도 기술개발에 막대한 돈을 쓴다는 것은 분명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SDI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부시행정부는 레이건 시대 사용된 금액과 유사한 매년 30-40억 달러를 미사일방어 정책에 계속 쏟아 부었다. 본 논문은 무슨 이유와 논리가 이런 흐름을 이어지게 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부시행정부의 미사일 방어정책을 살펴보았다. 먼저 필자는 Ⅱ장에서 부시행정부 집권 직전 SDI는 그 기술적 발전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핵우산의 건설이라는 본래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함이 드러났다는 점, 이런 상황 속에서 SDI 지지자들은 목표를 부분적 방어로 전환하고 그 부분적 기술의 조기배치를 통해 SDI 사업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Ⅲ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똑똑한 조약돌(Brilliant Pebbles)’라는 신기술이 등장하고 부시정부에 의해 새로운 SDI 핵심기술로 받아들여지면서 SDI의 기술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부상하였다는 점, 그리고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공격으로 제3세계 불량국가들의 위험성 제기되면서 불량국가들이 소련을 대신할 SDI의 존재이유가 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소련이 해체되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안전하고 따라서 미국을 지킬 수단의 개발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미사일방어를 다시 살리려는 분위기가 미국 정가를 지배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Ⅳ장에서는 이런 분위기 변화 속에서 부시행정부는 ‘GPALS(Global Protection Against Limited Strike)’라는 자신의 미사일방어정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SDI의 핵우산개념을 버리고 제3세계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로 미사일방어의 목적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또한 부시행정부와 SDI 지지자들은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의 성공소식을 이용해 미사일 방어를 유지, 정당화했고 그것을 통해 SDI 자금을 43퍼센트 증액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Ⅴ장에서는 1992년이 되면서 패트리어트, BP 기술, 심지어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았던 지상발사 요격시스템까지 모든 관련 기술들이 처음 주장들과는 달리 훨씬 실현가능성이 낮은 것이며 성공가능성이 과장되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 그리하여 클린턴 집권기가 가까워올 때쯤 SDI는 결국 그 형성이래 최저점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조지 H. W. 부시 정부 하에서 SDI는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과 소련을 대체할 새로운 적의 등장, 걸프전에서의 첨단무기에 대한 환상 등이 결합되어 다시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비록 규모가 축소되고 그 대상을 달리하긴 했지만 레이건 시대와 유사한 국가적 지원을 얻는 사업으로 남았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여전히 기술적인 돌파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다시 부시행정부의 끝나고 클린턴이 집권하게 되는 1993년 무렵에는 10년간의 엄청난 자금 투여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가 없는 정책으로 전락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