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숙수사지 출토 금동불상군의 제작기법 고찰

본 논문은 영주 숙수사지에서 출토된 신라소형금동불의 제작기법에 대한 연구이다. 출토된 27점의 불상들을 살펴보면 주조방법으로는 통주식과 중공식으로, 결합방법으로는 일주식과 별주식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통주식ㆍ일주식 소형금동불이 많고, 통일신라에는 중공식?별주식 소형금동불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통일신라 불상 중에서도 높이(대좌+불신)가 0~10㎝미만의 작은 불상에서는 고식의 통주식?일주식 제작방법이 여전히 많이 활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밀랍이나 銅의 소비량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글에서는 각 불상 제작 시 나타나는 특징, 즉 내형토, 주조구멍(폭치), 광배 등의 변화를 검토하여 시대에 따른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첫째, 중공식 불상 제작 시 내형토는 주조구멍(폭치)을 통해 대부분 제거되지만, 7세기 중엽의 일부 불상들에서는 주물 불량으로 주조구멍이 막혀 내형토가 그대로 남아 있는 예가 확인되었다. 이는 古式인 통주식 주조법에서 새로운 기법인 중공식 주조법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시행착오로 판단된다. 즉, 신라 소형금동불 제작에 있어서 본격적인 중공식 주조법의 도입시기는 7세기중엽 일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중공식 불상의 폭치 위치와 형태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가 확인되었다. 7세기 중엽의 중공식 불상에서는 주조구멍이 상의 바닥면에 설치되는 것에 반해, 통일신라 중공식 불상에서는 모두 상의 뒷면에 설치되었다. 아울러 통일신라 불상 중에서도 전?중기 불상들에서는 상 뒷면에 1~3개의 작은 주조구멍이 부분적으로 설치되지만, 통일신라 후기 일부 불상에서는 뒷면 전체를 주조구멍으로 하여 상 뒷면의 내부가 모두 드러나는 예도 확인되었다. 셋째, 광배의 경우 6세기에 조성된 금동보살입상은 고구려계 일광삼존불과 유사한 거신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7세기 금동불은 대부분 후두부에 광배 촉이 남아 있어 두광이 있었고, 통일신라 금동불은 광배 촉이 불신 배면에 확인되기 때문에 대부분 거신광배가 결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통일신라 8~9세기 중공식 소형금동불의 배면에 있는 주조구멍은 거신광배를 통하여 가려졌을 것이다. 즉 통일신라 소형금동불에 있어서 중공식 주조법과 거신광배는 밀접한 관련 속에서 동시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