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유역의 고인돌 연구

본 글에서는 강원도 지역에 있는 남한강 유역의 고인돌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인돌의 분포입지에 있어서 대부분의 고인돌이 하천가의 강변이나 충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청동기인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하지만 신석기인들의 생활터전인 강변과도 일치되는 부분이기도 하며, 이른 시기에 소집단에 의해 소규모의 고인돌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둘째, 고인돌의 형식에 있어서 형식분류를 한 62기 중 탁자식이 5기이고 개석식이 43기, 기반식이 19기이다. 한강 일대에서는 타 지역에 비해 기반식의 분포비율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기반식으로 분류된 대부분은 무지석식으로서 향후 개석식으로 분류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남한강 유역의 고인돌의 연대는 군집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하류지역인 양평 양수리 고인돌에서 출토된 숯의 연대측정치 3,900±20BP와 춘천 발산리 고인돌의 연대측정치 2,490±70BP, 그리고 고인돌의 크기 등을 토대로 출토유물의 양상과 주변유적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BC 5~7세기로 추정하고자 한다. 넷째, 이 지역 고인돌의 평균무게 3.4톤은 운반에 34명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크기로서 5인 가구에서 1명씩 부역을 산정하였을 경우 170명 정도가 모여 사는 소집단으로 보이며, 원주 건등리 1호, 평창 주진리 1ㆍ5호 고인돌의 경우는 10톤 이상으로 이 지역주변에는 500명 이상이 집단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집단을 한국에서의 고대국가 형성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론적 배경으로 활용되는 국가성립 이전의 단계인 족장사회로 보고자 하며, 이 족장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수가 수만명을 넘어서는 여러 지역을 통할하는 수준의 복합족장사회(complex chiefdom society)가 아닌 1천 명 안팎의 구성원을 가진 단순족장사회(simple chiefdom society)일 것이다. 이는 50톤 이상의 고인돌이 축조된 경기지역, 서남해안지역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