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텔 벽화와 식민지 근대 벽화의 公的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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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은 1914년 10월, 고종황제의 즉위식이 거행된 환구단과 석축의 일부를 허물고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영 호텔로 개관했다. 1960년대 호텔이 철거되기 전까지 본 건물 1층 중앙 홀과 연회실에는 일본 근대 서양화가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郎, 1881-1966)와 유아사 이치로(湯浅一郎, 1868-1931)가 제작한 벽화가 설치되어 있었다. 본 연구는 이제까지 구체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이들 벽화를 대상으로 식민지 근대 벽화의 公的 기능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벽화는 단순히 벽면을 장식하는 심미적인 목적 외에 그림이 놓여 진 공간을 상징, 표상한다는 점에서 화가 개인의 창의성보다 ‘공공성’, ‘사회적 기능’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근대 벽화의 공적 기능이라는 관점에 주목하여 조선호텔 벽화의 정치적 함의를 도출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먼저 조선호텔 벽화의 전체상을 사진과 미술잡지, 보고서 등을 통해 복원하고, 주제 선정의 경위를 당시 일본인들의 ‘조선취미’와 조선총독부 철도사업과의 관련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 벽화의 주제 선정은 당시 조선총독부의 철도사업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앙 홀에 설치된 “수원, 경주, 전라북도, 금산사, 개성, 경성 창덕궁 비원, 우이동 및 금강산의 절경”은 1914년경 완공되는 철도노선과 일치하는 장소들이며, 일본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지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향유되던 명승고적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으로, 결국 조선호텔 내부를 장식한 “조선의 風色”이란 조선의 풍경이자, 제국 일본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전통을 단절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는 하는 일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데 있어 중요한 과제였다. 실제 1910년 한일병합 이후 본격화되는 도시개조를 통해 조선왕실의 상징공간은 제국의 권력과 질서를 재현하는 공간으로 변모되어 갔다. 이처럼 과거의 권위와 전통을 단절시키고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히는 작업은 환구단을 허물고, 제신의 위판을 봉안한 황궁우를 후원의 완상물로 삼으며 건립된 조선호텔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제국 일본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 조선의 명소를 주제로 한 조선호텔 벽화는 이런 점에서 단순히 벽면을 장식하는 심미적 기능을 넘어, 새로운 공적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